최근 정유정 작가님의 책 <종의 기원>에서 한 구절을 보고 원래 죽음에 대해 관조하던 생각들에 금이 갔다. 작중 주인공이 '해진'이라는 인물과 어느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나눈 대화에서 "나는 죽음에 대해 낭만적인 치장을 하는 게 싫어. 수류탄에 초콜릿을 바르는 꼴이니까."라는 명대사를 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데 세 가지 방식이 있다고 설명했는데,
첫째로 '억압'. 죽음이 다가온다는 걸 잊어버리고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양 행동하는것. 흔히 대부분 사람들이 살아가는 양상이다. 두 번째는 '항상 죽음을 마음에 새겨놓고 잊지 않는 것'. 오늘을 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할 때 삶은 가장 큰 축복이라는 것. 세 번째는 '수용'. 죽음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잃을 처지에 놓여도 초월적인 평정을 얻는다는 것.
여기까지 읽고 '음..맞아 그리고 난 수용적인 방식으로 살아.'라는 내적 대답과 동시에 책 다음 구절이 내 '자기기만'을 완전히 깨트려버렸다. "이 세 가지 전략의 공통점이 뭔 줄 알아? 모두 거짓말이라는 거야. 셋 다 치장된 두려움에 지나지 않아." 그러고 '그럼 뭐가 진실이냐'는 주인공의 말에 "두려움이겠지. 그게 가장 정직한 감정이니까."라면서 대답했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결국 내가 인생을 미련과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도 '두려움' 때문이니 말이다. 나는 나만의 방법으로 죽음에 대해 직접적으로 대면을 한 것이었는데 다시 정직하게 맞서고 보니 또다시 두려움이 잠깐 생겼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야 다시금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떨쳐 낼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반대로 안 죽고 영원히 사는 것은 좋은 것인가?'라는 물음에 도달했다. '영원히 산다'라... 인간 결국 살면서 평생 생존하는 법을 갈구하고 연구하며 살아갈 터인데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면 결국 영원히 생존에 대한 갈망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더욱 어렵고 무섭게 느껴졌다.
결론적으로 도달한 생각이 '죽는 것보다 죽지 않는 것이 더 두렵고 무서운 것'. 작은 두려움을 큰 두려움으로 눌러 혼란했던 생각이 진정되었다.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해봐도 영원히 사는 것이 더 고통스럽고 무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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